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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9만명에 '가족' 울타리

작성일 : 2005.10.13  |  조회수 : 8704

[홀트아동복지회 12일 창립 50주년] 봉사 代물림 말리 홀트 이사장
"한국은 제2의 고향, 장애아 등에 여생 바칠것
고아수출국 비난땐 아픔도 낳고 기르는 情 똑 같아"

"한국은 제2의 고향입니다. 얼마남지 않은 삶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입양보내기 힘든 장애아들을 돌보고 싶어요."

11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 일산복지타운.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말리 홀트(70ㆍ여)씨는 "하루하루 입양아들과 장애인들을 보살피는데 신경을 쓰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라며 미소를 지었다.

설립자인 홀트 부부의 딸인 말리씨는 50년을 입양아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해 온 홀트아동복지회의 산 증인. 아버지 해리 홀트(1964년 사망)씨와 어머니 버다 홀트(2000년 사망)씨가 떠나간 뒤에도 홀트아동복지회를 이끌고 있다. 칠순의 나이지만 지금도 일산복지타운에서 생활하면서 장애 때문에 입양이 불가능한 장애인 등 270여명을 직접 보살피고 있다.

말리씨가 입양과 인연을 웰염?부모가 1955년 10월 12일 한국전쟁으로 고아가 된 12명을 미국 가정에 입양시키면서부터. 이 중 8명은 말리씨의 동생이 됐다. 홀트 부부는 우연히 한국전쟁의 참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뒤 굶주림과 질병으로 꺼져가는 생명의 일부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입양을 결심했다.

당시 미국에서조차 입양이 생소했던 터라 '국경을 넘은 입양'은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 됐고, 미국인들도 전쟁고아 입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말리씨는 "언론을 통해 입양소식이 전해지자 자신들도 입양하고 싶다는 전화가 수백통이나 걸려와 부모님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홀트 부부는 이를 계기로 이듬해인 1956년 직접 한국에 와서 서울 효창공원 인근에 임시 보호소를 만들고 전쟁고아들의 해외입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말리씨도 같은 해 미국서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부모와 함께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도움을 청한 데다 자신 또한 입양 일을 평생의 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보살필 의료진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자신의 몸도 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쁜 것은 오히려 견딜 만 했다. 입양을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부담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악몽으로 기억된다. 정부는 '고아 수출국'이라는 비난을 우려해 해외입양 금지령을 내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조치였지만 홀트아동복지회 존립 자체가 흔들렸다. 늘어나는 입양희망아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정부가 슬그머니 금지령을 취소한 것은 다행이었다.

홀트아동복지회가 50년 동안 국내외에 입양을 보낸 아이는 모두 9만5,574명. 해외로는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 대부분 입양아들의 성장 환경이 좋은 선진국에 보냈다. 초창기에는 혼혈아와 전쟁고아가 대다수였지만 요즘은 미혼부모 아이들이 많다.

앞으로의 과제는 국내 입양을 보다 활성화하는 것. 국내입양은 1957년 1명을 시작으로 1979년 1,116명으로 최고에 이른 뒤 점차 줄고 있다. 현재는 연 500여명 정도. 말리씨는 "인식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한국인들은 아직까지 순혈주의에 빠져 입양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낳은 부모나 기르는 부모나 모두 똑같다"고 말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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