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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고아와 장애인의 어머니
故말리 홀트 이사장님을 추모합니다.

-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 임직원 일동

In loving memory of the late Chairperson Molly Holt, the Mother of Orphans and Disabled, who has been called upon by God -all executives and employees of Holt Children’s Services, Inc.

말리 홀트 MOLLY LOU HOLT (1935.11.24 ~ 2019.05.17)

2000.8.24.~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 Chairperson of Holt Children’s Services, Inc. )

장애아동을 돌보는 데에 평생을 바친 하나님의 사람, 말리 홀트 이사장이 83세의 나이로 소천하였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말리 홀트 이사장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고, 좋은 기억들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말리 홀트 이사장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25년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며, 홀트복지타운의 장애아동들과 함께 해오셨습니다. 한국의 고아를 돌보는 일을 평생의 사명이라 여기며 봉사의 삶을 이어왔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 간호사를 시작으로 60여 년이 넘는 시간을 홀트와 함께한 홀트의 역사며 산증인이셨습니다. 말리 홀트 이사장은 아버지 해리 홀트와 어머니 버다 홀트의 유지를 받들어, 버림 받고 상처 입은 수많은 전쟁고아와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가정을 찾아주는 일에 온 일생을 바쳤으며 암투병중에도 마지막 남은

일생을 ‘마음껏 사랑하는 일’에 쏟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한평생 독신으로 소외 받은 어린이들과 살아온 말리 홀트 이사장의 삶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It is heartbreaking to announce that Chairperson Molly Holt, a beloved from God who devoted her entire life to caring for disabled children, has passed away at the age of 83. Please pray for her family and for many who have loved her that they might find peace in them and share your memories with them.

Ms. Holt was born and raised in the USA for 25 years but spent twice as much time in Korea to be with the disabled children at Holt Welfare Town. She believed that it was her lifelong mission to care for the orphans in Korea and continued to contribute her life to serve them.

She started as a nurse at the Holt Children’s Services and was a living witness to Holt's history and she was the history itself who had spent over 60 years with us. To continue with the legacy of her father, Harry Holt, and her mother, Bertha Holt, Chairperson Molly Holt devoted her entire life to find welcoming homes for many war orphans and disabled, who were abandoned and wounded. She even said that she would devote her remaining life ‘to the things that she loves with her whole heart’ while she was in the throes of fighting with cancer. The Holt Children’s Services, Inc. will never forget Chairperson Molly Holt who remained single and has lived with neglected children for a lifetime.

말리 홀트 이사장 소개

1935년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 화이어스틸 출생.
세이크리드 하트 간호전문대학(3년)와 오레곤 대학교 간호학과(학사)졸업 및 특수교육 이수(6개월).
휘튼 대학교 수료 멀티노마 신대원 1년과정 졸업.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이수.
북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특수 교육과 재활 상담학(석사)을 전공.
평택대학교 창학 100주년 명예박사 학위 수여.

6.25 전쟁 이후 열악한 한국의 복지, 의료사업에 헌신적 자원봉사활동으로 영아원, 보육원 간호사와 경남과 전남북의 컴패션 간호사로 순회지도 감독을 하며 무의촌 주민질병의 예방사업에도 전력했습니다. 한편으론 뇌성마비 등 특수재활의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미국에서 연구를 하는 등 인식이 부족한 한국의 의료사업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을 맡아 활동해오며 이러한 경험들을 나사렛 대학교, 수원여자대학의 강단에서도 가르쳤습니다.

주요경력

1935년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 화이어스틸 출생
1953년 ∼ 1956년 세이크리드 하트 간호전문대학 졸업
1956년 ∼ 1959년 한국 홀트아동복지회 간호사로 근무
1961년 ∼1965년 오레곤 병원 간호사로 근무(U.S.A)
1970년 ∼1972년 전주 예수병원에서 지역사회부(무의촌 주민질병 예방사업) 시작
1972년 ∼ 1974년 극동방송국 위생담당 간호원으로 경남 농어촌 및 낙도 순회진료
1975년 ∼ 홀트아동복지회 일산복지타운(장애인생활시설) 간호고문으로 봉사
1995년 ∼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1997년 ∼ 2001년 나사렛 대학교 재활보육론 강사
1998년 ∼ 2000년 8월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2000년 8월 24일 ~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수상내용

1981년 4월 20일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장애인의 날)
1984년 3월 11일 월드 비젼 로버트 피어스상 수상
2000년 10월 27일 대한적십자사 인도장 수상
2001년 9월 1일 一家賞 「사회공익부문」수상(일가재단)
2001년 12월 5일 사랑의 봉사상 사랑나눔이상
2003년 11월 18일 「비추미상」특별상 수상(삼성생명공익재단)
2005년 12월 15일 제3회 굿뉴스 메이커(Good News Maker)상 수상
2007년 4월 23일 펄벅재단 올해의 여성상 수상
2007년 11월 18일 「파라다이스 상」복지부문 수상
2009년 3월 24일 노르웨이국왕 The Order of Merit 훈장 수상
2009년 10월 29일 YWCA 제7회 한국여성 지도자상 특별상 수상
2011년 11월 18일 MBC 사회봉사상 특별상 수상
2013년 12월 17일 협성사회공헌상 사회봉사부문 수상

장례는 홀트아동복지회葬으로 진행될 계획입니다.

The funeral will be held by Holt Children’s Services, Inc.
빈소 연세대학교 신촌장례식장 특1호실 (02-2227-7500)
발인 2019. 5. 21(화) 07:00
영결예배 2019.5.21.(화) 10:00 홀트일산복지타운 내 홀트체육관
장지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로 42
Funeral Home Yonsei University Shinchoen Funeral Hall Special Room 1 (Tel: 02-2227-7500)
Funeral cortege leaves on Tuesday, May 21, 2019, 07:00 am
Funeral Service Tuesday, May 21, 2019, 10:00 am at Holt Gymnasium in Holt Ilsan Welfare Town Hall
Burial Site 42 Tanhyeonro, Ilsan Seogu, Goyang, Gyeonggido

※ 조화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조의금은 말리 홀트 이사장의 뜻에 따라 아동과 장애인을 위하여 쓰여집니다.
( We politely decline to accept any flowers. Condolence money will be used for children and the disabled in accordance with Chairperson Molly Holt’s wish.)

“I’m from Holt” (저는 홀트 출신입니다.)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장애아들과 생활하면서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홀트 사역의 처음부터 함께 하셨던 김형복 선생님께서 제안을 하셨던 터라, 잠시 한국 아이들을 떠나 미국에서 특수재활교육 공부를 하고 오자는 것이었다. 태어난 곳 미국에서 생활한 시간보다 한국에서 생활한 시간이 훨씬 많아서 한국생활이 더 익숙한 때였다. 게다가 이곳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결정을 내렸다.

학생이 되어 다시 밟은 미국 땅은 낯설었다. 아무리 미국이 내가 태어난 고향이라지만 갓 스무 살이 되어 한국 땅을 밟은 이후 한국 아이들과 생활했고, 그 뒤 잠깐 학업 했던 기간을 빼고 한국으로 돌아와 오랜 기간 보냈으니 오히려 한국에 더 익숙해졌던 것 같다. 특수교육학 재활상담학 공부를 위해 6개월 넘는 시간을 체류하면서 개인적으로 참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알게 된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나눌 때면 조심스럽게 묻곤 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Where are you from?” (어디서 왔어요?)

이 질문을 받는데 어찌나 낯설고 묘한 기분이 드는지, 하지만 이내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오랜 한국 생활로 인해 영어 발음이 조금 뒤틀어지고 억양도 강해지는 등 말투부터 달랐을 것이고,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얼굴 생김도 동양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이 내게 어디 출신인지 묻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몰랐다. 미국 오리건 주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해 줄 때 그들의 놀라는 표정이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곤 한다.

어쨌든 그때 미국에서 공부한 특수학과 공부는 장애아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한국 나이로 80세가 되는데도 사람들은 어느 지역 어느 나라 출신인지 궁금한가 보다. 그때마다 예전의 일이 생각나 웃는다.

사실 나의 답은 따로 있다.

“I’m from Holt” (저는 홀트 출신입니다.)

미국에서 지낸 시간이 25년, 그 두 배가 되는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으니 이젠 한국인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한국인이 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건 한국에서 오래 생활했건 출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사명, 그 사명이 한국의 고아들을 돌보는 일이었고 사명지가 한국 홀트였다.

가정을 잃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지상 최대의 선물은 마음껏 사랑받을 수 있는 가정이라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한 사명을 안고 반세기 넘도록 일을 해 오고 있건만 세상이 바뀌고 생각이 다양해지다보니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는 것 같다. 간혹 세간에서 들려오는 우려의 목소리나 입양에 대해 부정적인 말이 서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홀트를 통해 펼치고자 하신 뜻에 순종할 뿐이고 그 일을 하고 있음이 자랑스럽다.

사람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사람이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 계획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스무 살, 간호학교를 막 마치고 대학공부를 하려고 할 즈음 한국에서 나를 부른 건 아버지였지만 그 뒤에 분명히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뜻이 계셨음을 믿는다. 전쟁고아를 돕다가 4년 뒤 미국으로 돌아갈 때도 한국에 올 거라 생각했다. 하나님께선 학업을 마치고 간호 선교사로서 다시 한국으로 오게 하셨다. 과연 그 분은 보잘 것 없고 연약한 내게 무엇을 원하셨던 것일까.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도 마음껏 일할 사람을 필요로 하셨던 것 같다.

세상엔 참 많은 사랑이 있다. 가족의 끈끈한 사랑, 연인의 뜨거운 사랑, 친구간의 예쁜 사랑 등 많은 사랑이 존재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 땅에 버려지고 소외되었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 때가 많다. 하나님은 그 사람 모두를 사랑하시고 아끼셨다. 또한 그 사랑을 알려줄 도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도구의 하나로 내가 사용되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많은 이들이 나를 향해 입양의 대모, 장애아들의 어머니, 때론 할머니, 여사님, 이사장님 등 여러 가지 호칭을 사용한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나는 그저 말리 홀트, 때론 누군가의 어머니라 불려 지기도 했고 때론 누군가의 가족으로 누군가의 언니로 불려 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어떤 호칭이 되었건 나는 스무 살 때 내가 그랬듯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누구보다 사랑을 온몸으로 원하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누구도 완전할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 힘주어 말할 수 있는 건, 한국에 머물면서 하나님이 원하셨던 사랑을 원 없이 베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아도,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에도 만족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생활하는 말리의 집 거실엔 ‘백골난망’ 이란 글귀가 걸려 있다. 이 글이 적힌 액자는 부산 소년의 집에서 성장한 고아가 30년 만에 나를 찾아와 건넨 선물이다. 처음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그 뜻을 알고 마음이 아주 뿌듯했다. 백골난망, 죽어서 뼈만 남은 뒤에도 잊을 수 없다는 뜻으로 큰 은혜나 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을 나타내는 말이란다. 그 버림받아 죽었을지도 모를 자신을 거둬 지금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다며 고마워했다. 액자를 받아들며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우린 모두 입양아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입양아다. 성경에도 분명히 우리의 입양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 8:14)

그렇기에 누구도 사람 앞에 자신할 수 없고 사랑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그 사랑의 위대함과 겸손함을 지금의 홀트에서 배우도록 하셨다. 홀트는 나의 정체성을 다시금 일깨워준 동산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출신지를 물어온다면 당당히 대답하고 싶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 출신이며, 58년이란 시간을 한국의 아이들과 보내게 해 준 이곳 홀트아동복지회라고. 나는 그 뜻에 맞도록 순종하고 행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아동은 가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모토로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 입양을 시작한 아버지 해리 홀트의 헌신,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며 사랑을 실천한 어머니 버다 홀트의 사랑, 이제 홀트家가 심은 작은 밀알 하나가 이 땅에 많은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한 것에 감사하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많은 이들의 숨은 공헌이 있었다. 한국 문화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가르쳐주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숨은 손길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들의 노력 없이는 오늘날 홀트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참 많이 변했고 발전했다. 60여 년 전 전쟁 통 같았던 기억들이 생생한데 지금의 한국은 도움 받던 나라에서 되레 도움 주는 나라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두운 그늘 속에서 신음하는 아이들이 있다. 입양만 해도 예전에 전쟁고아들로 인한 입양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사회 변화로 인한 미혼모 등에 의한 아기들의 입양이 주를 이룬다. 장애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면 안 된다. 가장 최선의 방법은 그들에게 지상 최대의 만남이 될 가정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비록 가정을 이뤄주지 못하더라도 가정과 맞먹는 환경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사랑받을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배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다. 이 활동들에 뜻있는 분들이 동참해 주길 바란다.

2014년 말리홀트 이사장의 원고중 발췌

19 홍인숙
사랑과 나눔을 함께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주님 품안에서 평안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18 장진백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보여주신 사랑 마음속 깊이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17 김혜경
당신이 보여주신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편안히 영면 하소서~~~
16 김강민
우리 마음속에서 영원히 기억 될 것 입니다. 삼가 고인이 명복을 빕니다
15 임보석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어떤말로도 표현이 안됩니다~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14 김남웅
말리 이사장님의 유훈을 잊지않고 평생 가슴에 새기며 장애인들의 교육과 사랑을 널리 실천하겠습니다. 하늘에서 평안히 영면하시길 기도합니다....
13 사랑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이제 하나님 곁에서 평안하시고 행복하세요.
12
말리홀트 이사장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1 전하림
정말 멋진 삶을 사셨습니다. 말리홀트 이사장님의 뜻을 기억하겠습니다.
하나님 곁에서 평안하시길 바립니다.
10 신용운
말리여사님 덕분에 오늘날 아이들 셋과함께 행복하게 살고있습니다.여사님이 소중하게 지키고자했던 가치 '모든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야한다'를 실현하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아이들을 만나게해주셔서 감사하고 고맙고 반입양세력들로부터 명예를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ㅠㅠ